본문 바로가기

일상

170214_발렌타인데이의 조금 우울한 이야기

#_
그 사람은 그랬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손으로 쓴 무언가를 연인에게 받았었다. 카드던 편지던 

물론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한 장의 카드를 선물과 주고

정말 짧은 한 줄이 적혀있는 카드더라도 꼭 받았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선물보다 좋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내가 너무 어렵게 만날 수 있었던 그 사람에게는

당연히 거절할 것이기에, 어떻게해도 받을 수 없을 것이기에

시도할 생각은 물론이고 단 한번의 요구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지금도 모를 것이다.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이어지고 끊어짐을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체념이 익숙해진 어느 날의 나는 한 장의 메모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손글씨로 적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마저 잊고 지낼 즈음이었다.


딱 1년만.

정말 딱 1년만.

1년 전에 받았다면 이렇게 지쳐버릴 일이 없었을 텐데...

한 장의 메모에 갈 곳 잃고 묻어버린 마음들이 흘러내렸다.



#_

작년 발렌타인은 일요일이었다, 설 연휴의 끝자락.


토요일.

나는 아침에 한국에 도착했다.

밤비행기를 타고 가족여행에서 돌아왔었고,

점심에 잠시 그를 만났고 그게 그 주말 만남의 끝이었다.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타기 직전

그는 내일 저녁에 친구 모임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당연히 그 모임을 피해서 만날 수 있는 거였다.


아, 일요일에 그는 아팠다.



2년 전 발렌타인은 토요일이었다.

새벽에 깬 나는 한장의 흑백사진을 오래도록 보다가

초콜렛을 만들까 고민했고,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격이 없어 그만두었다.


아침내내 카톡이 씹혔지만

괜찮은 척 하며 오늘 뭐하냐고 물었고

누워있다길래 영화보자 했지만

오후에 친구들 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보고 싶다며 보고싶은 영화를 말하길래

멍청하게도 일요일은 어때?라고 물었다.

물론 그는 일요일에 가족모임이 있다고 답했다.


일요일 오후에는 언제나처럼 얼마 안남은 일요일과 곧 다가올 출근을 이야기했다.



#_

그럴 자격이 있을 때건 없을 때건

그의 주말에는 자주 가족모임 혹은 결혼식과 장례식, 친구모임이 있었다.

아니면 아프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가


어느정도는 사실이었겠지.



#_

연인이 되기 전에, 그리고 자격이 없었을 때

일요일 저녁 혹은 밤에 꼭 남은 일요일을 한탄하는 연락이 왔었다. 

이외에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삶이 힘들다 싶으면 내게 연락이 왔었다.


연인이 되기 전의 나는

직장인의 비애를 나눌 수 있는 편한 사람,

조언과 따스한 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자격이 없었을 때, 마음이 복잡했던 나는

상대는 따로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굳이 내게 하는 이유를 고민했었다.

나는 (기분 좋고 행복한 이야기는 다른쪽에서 하고 응원을 나눠준 뒤 찾아가는) 감정의 쓰레기통인가

아니면 나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_

내게 연인은 일상의 소소함까지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징징거릴 수도 있고,

작지만 재밌었던 일, 웃을 수 있었던 일, 별거 아닌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힘들다는 이야기였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된 후로는 일상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감정선과 컨디션에 대해서는 알지만 일상에 대해서는 글쎄...

이건 내가 가진 편견이거나 단편적인 기억에서 나온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_

작년 이맘 때, 나는 여행을 자주 갔었고

삼일절 즈음에는 귀국하는 저녁 내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작년 초, 그러니까 지난 겨울이었을까

아니면 그 전부터였을까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작년 3월이나 그 이후부터였을까


참 궁금하다.



#_

이 다음 조금 우울한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쯤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_

다 미어져버린 마음 덕분에 이제는 무뎌진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떠오르는 기억이 많은 날이면 아직도 미어질 마음들이 남아있나 싶다.

가슴이 뭉게지던 기억은 잊혀진 것 같아도 잊혀진 게 아닌가 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219_잠에서 깨면  (0) 2017.02.20
170217_감기  (0) 2017.02.17
170212_헷갈림  (0) 2017.02.13
170206_17리스트  (0) 2017.02.06
170105_숫자3  (0)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