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쪽 첫 조카는 똘망똘망한 남자아이이다.
올해 9살이고, 동생을 아주 이뻐한다.
4,5살 때는 사촌언니들에 비해 좀 어린 내 서열을 인지하고
화장실 같이가자고 손을 잡아끌기도 했었고
다른 조카와 함께 장난치면서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를 침대에 패대기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어린이가 되어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각설하고,
지난 추석때 체스를 둘 줄 아냐고 물어보더니
얼마나 아끼는 지 코팅된 박스가 닳아있는 체스판을 가져왔다.
혼자 책보면서 전략 공부한다는 아이에게
거의 10년만에 체스를 두는 나는 자존심 좀 세우다가 패배.
체스말 이름도, 규칙도 가물가물한데 그정도 경기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막판에 머리쓰기 귀찮아서 조금 대강했다. 내 무릎에는 또다른 조카가 귀요미처럼 앉아있었고)
그리고 어제 다시 이 아이를 만났다.
엄마는 이모랑 함께 9살 조카의 동생(15개월이었나?)을 봐주고 나를 소환했다.
저녁먹으러 오라고_
말할 기운도 없고 그럴 기분도 아니어서
그닥 살가운 딸, 조카, 처제, 이모 역할은 못하고 식당에 다녀왔다.
식사 후 언니네 집에 들어가는데
뜬금없이 내게 체스를 두자고 그런다.
싫어- 라고 몇번 튕겨주다가
추석 때 체스상대가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자주 못보는데 기억한게 기특하기도 해서
알았어 딱 한 게임만이야
아가가 오는 방은 위험하다며 다른 방으로 들어가
그날의 그 체스판을 꺼내는 걸 보자니 슬핏 웃음이 났다.
이모 체스두는 거 10년만이야- 이렇게 너랑 게임할 수 있는게 용하다
왜요?
10년동안 안하면 많이 까먹지. 기억안나는 게 얼마나 많은데ㅋㅋ
너는 기억나니?
아, 너 10살 안됐지?
저 9살 이에요
10살도 안된 꼬맹이 앞에서 10년 전 타령이라니...
이모라는 단어의 느낌이 물씬 와 닿았다.
내게 10년이란 시간이 인생의 40%니까 짧은 것은 아니지만
얘한테는 상상도 안되는 시간이겠구나
오늘 낮에 신화의 Time machine을 듣고 있는데 어제가 생각났다.
신화는 데뷔 14년차.
초딩이던 나는 이제 직장인.
Young gunz때는 풋풋한 우정이 느껴졌다면
Time machine은 우정에다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이 떠오른다.
어휘부터 다르다
아들, 와이프, 부모님, 사업... 이런 말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두 노래의 타임라인 중간에 서 있는 나는(Young gunz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10년 후가 그려지지 않는다.
내 친구들, 동아리 언니오빠들 그리고 현재의 나와 어느정도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들.
이들과 얼마나 연락을 하고 지낼까. 소식이나 접할 수 있을까
함께 과거를 추억할 이들이 지금처럼 남아있으면 좋겠다.
10년이란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 9살 조카에게는
너 9년 전에 태어날 때 기억나니? 아가때 기억은? 그거랑 비슷한거야-
라고 설명해줬고
체스말을 셋팅하던 우리는
영어 writing이랑 수학숙제 다했냐는 사촌언니의 무서운 질문에 고대로 판을 접었다.
언니포쓰 갑bbb 요 맹랑한 아이가 반발없이 바로 숙제를 하러 갔다.
아휴 어린이들도 고생이 참 많구나 싶었다.
++) 어쩌면 거의 남지 않은 고등학교 친구를 잃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잃은 것일 수도 있고.
이제는 고등학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다. 어쩌지. 더 조심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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